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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김수자의 다의적이고, 신비하고, 비물질적이며, 정밀한 몰입형 설치 작업들은 존재, 비존재, 그리고 존재에 이르는 과정과 관계된 주제를 탐구한다.
타냐 보낙다르(Tanya Bonakdar) 갤러리에서 개최된 김수자의 전시는 약 20년 만에 열린 뉴욕에서의 개인전으로, 작가의 최근 행보를 살펴볼 수 있는 반가운 기회였다. 김수자(1957년 대한민국 대구 출생)는 그간 국제적인 활동을 펼쳐왔으며, 전 세계 유수의 기관에서 열린 전시를 통해 영향력 있는 존재감을 보여왔다. 그중 도큐멘타14(2017), 제55회 베니스비엔날레(2013, 한국 대표), 제24회 상파울루 비엔날레(1998, 한국 대표) 등의 국제 전시에 참여하는 등 지난 30년 동안 30건 이상의 비엔날레와 트리엔날레에 참여한 바 있다.
개념미술가이자 퍼포먼스 작가로 큰 존경을 받는 김수자는 영상, 사진, 조각 작업을 선보이기도 한다. 점차 더 몰입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그녀의 설치 작업은 여러 장르와 장소에 맞게 대응하는 태도를 견지하며 이는 종종 직물, 거울, 빛, 소리를 포함한다. 김수자의 작업 세계의 또 다른 특징은 독창적이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자신의 고향인 한국의 예술적 전통과 철학을 동시대 서구의 시각적 실천 및 기법을 결합한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서울과 파리, 뉴욕에 오랜 기간 거주해 온 세계시민으로서, 그리고 장소특정적 설치 작가로서 그녀는 예술을 위해 세계를 여행한다.
뉴욕 첼시에서 진행된 이번 전시에서는 지난 6년간의 작업을 볼 수 있었다. 각 작품은 오래전 시작된 프로젝트와 동일한 제목을 지니고 있는데, 이것들은 시간이 흐르고 작가의 사고가 지속적으로 변화함에 따라 재구상 및 재맥락화되면서 반복되어 온 작업들이다.
전시 공간의 창문에 설치된 작업 <호흡>(2024)은 작가가 자주 사용하는 회절격자 필름으로 구성되었다. 빛이 이 필름의 표면을 거쳤을 때, 그 빛은 때때로 무수히 많은 무지개로 분절되어 북극광과 같은 효과를 만들어낸다. 갤러리 내부의 중앙 공간에 보이는 <호흡>(2015)은 매끈한 거울 표면을 가진 직사각형 구조물로 전시장 바닥에 설치되어있다. 그 중앙에는 또 다른 직사각형이 빛으로 투사되고 있으며, 이 직사각형의 색은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거울 표면에 선명하게 투사된 이 색채는 그림을 그리듯 그 공간과 공기를 물들인다. 이 색채의 변화가 서서히 이루어지면서 발생하는 리듬은 호흡의 들숨과 날숨과 같은 순환을 연상시키며,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호흡과 몸을 더욱더 의식하도록 유도한다.
더불어 이 구조물의 거울 표면에 맺힌 상은 공간을 이중으로 확장해 개방하며, 음과 양의 균형처럼 완결된 듯한 광경을 형성한다. 관람자는 덧신을 신고 그 위를 걸을 수 있는데, 발 아래의 땅이 사라진 것 같은 모습, 공간이 뒤집어진 듯한 모습, 중력의 힘이 불확실해진 것 같은 모습은 불안정한 감각을 자아내기도 하고 또 자유롭게 떠다니는 듯한 상태에 상상적으로 돌입하게 하기도 한다. 김수자는 자신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보다 기존의 공간을 변형한다는 방법을 취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때 작업을 구성하는 물리적 공간은 대체로 큰 변화 없이 남아 있지만, 시각적이고 심리적인 차원에 변화가 가해져 보는 이는 그곳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2층의 전시 공간에는 나무 틀 위에 팽팽히 당겨 짜여진 세 개의 채색되지 않은 리넨 캔버스가 설치되어 있다. 정교하게 짜인 미묘한 광택의 직물 너머로 나무 틀의 그리드가 비쳐 보여 그것은 마치 그림이나 스크린의 뒷면처럼 보인다. 이 캔버스들은 천장으로부터 내려오는 선에 고정되어 바닥 위 2피트 정도 부유하는 것 같은 상태로 놓여있다. <메타-페인팅>(2024)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작업은 유동성과 미래성을 지닌 잠재적 상태를 암시한다. 일시적으로 천장에 매달린 형태로 정지된 회화 또는 이제 막 생성되거나 구축되고자 하는 상태의 회화는 기억들과 느낌들의 뒤얽힘이 일종의 구조를 이루게 되는 공간이 된다. <메타-페인팅>이 지닌 이러한 구조는 의도적으로 불확정적이며, 만듦과 만들지 않음 사이에 정지해 있다. 그리고 이것을 보기 위해 공간에 입장한 관람자 또한 이러한 전환의 중간 상태에 가담한다.
이 캔버스들과 함께 김수자의 대표작 중 하나인 보따리(소지품을 천으로 감싸 운반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든 한국 전통적 방식의 꾸러미)들이 한 데 놓여있으며, 캔버스로 짠 것과 동일한 천으로 만들어졌다. 바닥에 놓인 이 보따리들과 달리 그녀는 과거 작업에 화려한 색채와 문양, 호화로운 소재로 보따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작가에게 보따리는 개념적으로 중요한 형태로, 일상과 보통의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예술의 영역으로 개입시키는 그녀의 방식은 페미니즘에 기반한 해석을 가능케 한다. 이러한 방법론은 1992년부터 그녀가 반복해서 취해온 것이기도 하다. 보따리의 내용물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작가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내용물을 선택한다. 의도를 가지고 설계된 것이 그렇듯 작가가 행하는 모든 세심한 행위는 고전적인 우아함을 지닌다. 보따리는 종종 전시가 개최되는 지역에서 찾은 옷가지와 사물로 채워지며, 함께 걸린 채워지지 않은 평면 캔버스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또는 무형의 것을 담는 용기가 되기도 한다. 길을 떠난 이들이 지니고 다녔던 보따리는 강제적 이동, 망명, 비영구성을 표상하며, 집의 상실을 의미하는 동시에 새로운 집을 구축할 수 있는 미래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녀의 작품은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오늘날 삶의 불가피한 부분이 된 떠남과 귀환과 연결된 쟁점을 다루고 있다.
갤러리 위층의 작은 프로젝트 공간에는 6피트 높이의 수직 타원형 작품 <연역적 오브제>(2016)가 놓여 있다. 실제 크기보다 더 압도적인 느낌을 주며 보는 것만으로 바로 그 정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이 작품은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 작품의 시각적 착시를 연상시킨다. 거울 지지대 위에 세워져 있는 <연역적 오브제>가 가진 검은 표면은 빛을 흡수하는 듯한 밀도 있는 벨벳 질감을 가지고 있으며, 그 형태는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브라만다 돌, 즉 ‘우주의 알(Cosmic Egg)’에서 영감받은 것이다. 작품 바닥면의 거울에 비친 모습은 두 개의 타원형이 위아래로 맞닿은 형상을 자아내는데, 이는 존재와 비존재, 그리고 존재에 이르는 과정의 또 다른 형태를 보여준다. 작품 주위를 거닐며 바라보았을 때, 내가 보는 면의 형태는 고정된 듯 그대로였다. 나는 그것이 평평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확신할 수 없었고, 모서리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동시에 3차원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 작품의 모호성이 작품을 더욱 강렬하고, 신비하고, 기묘해 보이게 만들어 흥미로웠다. 작품을 감상하며 내가 가졌던 이러한 질문은 해소될 수도 있었겠지만, 어쩌면 어떤 것은 그럴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인접한 또 다른 공간에는 세 점의 한지 작업 <연역적 오브제: (Un)fold)>(2023)가 벽에 걸려있다. 액자 안의 각 작업은 작가가 손으로 한지를 구긴 후 그것을 다시 그전과 같이 판판하게 펼치는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작품의 표면에는 되돌릴 수 없게 변형된 흔적이 남아있는데, 이는 김수자의 예술이 주요하게 다루는 제스처, 창작 행위를 가장 순수하고 근원적인 제스처로 묘사한 것이다.
• 김수자의 설치 작업 <호흡 — 별자리>는 파리의 부르스 드 코메르스 – 피노 컬렉션에서의 전시 《Le monde comme il va》의 일환으로 2024년 9월 2일까지 전시되었다.
— Studio International, 2024년 5월
영한 번역(한국문화예술위원회 후원): 임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