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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 풀기

키티 제일만스

2024

  • 소지한 물건을 천으로 싸서 매듭으로 동여맨 이 단순한 꾸러미는 시대와 문화를 불문하고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무척 실용적이기도 해서, 매듭을 풀면 바로 쓸 수 있는 이불보 혹은 담요가 생긴다. 한국에서는 이런 꾸러미를 보따리라고 하는데, 미술가 김수자의 작업에서 중요한 상징성을 갖는다 . 1957년 대구에서 태어난 김수자(Soo-Ja Kim)는 2003년 활동명으로 성과 이름 구분 없이 한 단어처럼 이어지는 김수자(Kimsooja)를 택했다. 레이던 시립 라켄할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네덜란드에서는 처음으로 김수자의 작업을 단독으로 선보이는 자리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그의 작업은 카셀 도큐멘타를 포함해 다수의 미술관, 전시, 비엔날레에서 소개된 바 있다. 장소특정적 설치작품도 세계 곳곳에서 감상할 수 있는데, 이제 레이던에서도 그의 작품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호흡 - 레이던>(2022)은 김수자가 2020년 루카스 반 레이덴상을 초대 수상하고 선보인 작품이다. 미술관 인근에 흐르는 아우더 베스트 운하 위로 백색의 거대한 반원형 아치들이 마치 큼지막한 바늘땀처럼 양쪽 제방을 잇는다. 밤이 되면 빛나는 아치가 수면 위에 반사되어 아름답게 춤추며 원을 그리니, 아치는 터널이 되고 '바늘땀'은 쉼 없이 움직인다.

  • 철제 아치와 천으로 된 보따리가 서로 동떨어져 보일지 모르나, 이 글을 통해 김수자의 작업이 얼마나 총체적인가를 보여주는 한편, 그의 작업에 담긴 풍부하고도 지극히 인간적인 세계관을 살펴보려 한다. 시작은 보따리가 되는데, 그 색색의 보따리를 풀어 이불보를 펼치면, 이제 사각의 캔버스가 생긴다. 나에게 그 네 귀퉁이는 김수자 작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길잡이가 되었다. 각각은 그의 작업에서 포착한 네 가지 서로 연결된 핵심 개념을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수평(실), 수직(뿌리), 작가의 몸(바늘구멍), 재료(물질과 영혼)이다. 김수자의 보따리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함께 알아보자.

  • 라켄할미술관 전시는 《실의 근원(Thread Roots)》이라 이름 붙였다. 영상 작품 시리즈<실의 궤적>의 여정이 암시하는 상호연결은 타인과 또 예술과 얽혀 있는 삶의 실 뿐만 아니라, 지구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호작용 을 드러낸다. '근원'이라는 단어는 또한 직물 검사장으로 쓰였던 라켄할미술관 건물의 본래 용도와도 닿아있는 것 같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김수자는 끊임없이 직물의 조직이나 형태, 쓰임에서 영감을 얻는다

  • 김수자가 'roots'와 'routes'라는 동음이의어를 제목에 자주 쓰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둘은 서로 연관이 있다. 궤적이 수평으로 펼쳐진다면, 뿌리는 아래로 뻗어나간다('뿌리 내림'에 관해서는 조금 뒤에 다룰 것이다). 김수자는 지구 구석구석을 여행하며 <실의 궤적> 연작을 촬영해 왔다. 세계의 다양한 수공예와 직물 문화를 향한 열정으로, 페루의 러그, 브뤼헤의 레이스, 인도의 자수, 북미 선주민의 직조까지, 이미 6편의 작품을 완성하였다. 그중 중국에서 촬영한 <실의 궤적 - 4장>(2014)과 모로코에서 찍은 <실의 궤적 - 6장>(2019) 두 편이 레이던에서 상영된다. 작품은 양털을가공하고, 실 타래를 만들어, 직조하는 것을 비롯해 모로코의 정교한 모자이크 예술 등 다종다양한 인간 활동을 담아내면서도 무척 조용하고 정적이다. 그러면서도 자연 역시 다채로운 장관으로 때로는 몰아치듯 때로는 부드럽게 보여준다. 우리는 바람이 불고 옥수수 잎이 바스락대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주변 소음 등 자연의 소리를 듣는다. 그와 함께 모자이크 타일을 자르는 소리라던가 여성복에 달린 방울이 딸랑이는 소리도 들려온다. 이러한 풍경의 산물과, 소리의 태피스트리를 이루는 원천은 직물의 짜임새와 질감, 패턴을 통해 공명한다.

  • 영상에서 대부분의 수공예 작업은 여성의 손으로 이뤄진다. 나중에 보겠지만, 김수자의 작업 한가운데에는 여성이 있다. 하지만 김수자가 대지에 품은 의미는 더욱 확장된다. 전시를 위해 스웨덴의 바노스 콘스트 조각 공원을 처음 방문한 그는 공원의 유기농 텃밭을 보고 이내 아마씨를 심기로 마음먹는다. 아마는 씨앗 기름은 유화 물감으로, 줄기는 리넨 캔버스의 재료로 쓰이는 작물이다. 그런 결정을 내리게 한 것이 바노스 콘스트의 자연이었다. 아마밭은 회화의 실제 재료를 얻는 원천일 뿐 아니라, 그 자체로 대지에 직조된 패턴이 담긴 유동적인 그림이 되었으니, 그의 《씨 뿌려 그리기(Sowing into Painting)》는 생명과 예술의 순환을 상징한다.[1]

  • 수평은 또한 땅을 일구고, 땅 위를 걷는 것과 같이 움직임을 상징한다. , 실을 꿰어 한 땀 한 땀 바늘을 천 안쪽으로 넣었다 빼는 움직임과도 유사하다. 꿰매고 수를 놓는 것은 수직적 행위로, 사람의 몸, 즉 작가 자신의 몸이 마치 걸어 다니는 바늘처럼 일상적이고 본질적인 행위를 통해 삶과 자연을 엮는다. 이 모두가 보따리에 꾸려져, 더 멀리 나아갈 채비에 나선다.

나는 수평적인 것을 떠올리면 김수자를 과거와 현재의 다른 예술가와 연결하게 된다. 수평과 수직- 의 방향을 생각하다보면, 네덜란드의 피에트 몬드리안(1872-1944)이나 러시아의 카지미르 말레비치(1879-1935)가 떠오르는데, 수평과 수직의 교차는 전 세계적으로 익숙한 상징인 십자 기호를 형성한다.[2] 십자는 세계의 내적 구조가 매듭지어져 있음을 전하는 동시에, 자신의 소지품을 감싸기 위해 이불보 귀퉁이를 묶는 행위를 나타낸다. 가령 <연역적 오브제>(1993)에서는 두 개의 수평선과 두 개의 수직선이 열린 구조를 이루는데, 구조물은 색색의 옷감 조각으로 싸여있고 실로 묶여있다. 작품명에서 '연역적'이라 함은 일반(때로는 이론)에서 특수를 도출한다는 뜻이다. 이 작품에서 기하학적 형태는 단단한 모서리 없이 천으로 부드럽게 표현되었으며, 다른 용도로 쓰이던 천 조각들에 예술성을 더한다.

  • 최근 몇 년 사이 전 세계적으로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 천, 직조, 자수의 활용이 다시 크게 부상하는 모습이다. 멀리까지 볼 것도 없다. 2020년 라켄할미술관에서 미술가이자 농부이자 활동가인 클라우디 용스트라(1963년 루르몬트 출생)가 초대형 직조 작품을 전시했는데, 양모 제조와 가공의 기원을 상기시킨 작품이었다. 1641년 지어진 라켄할미술관 건물은 본래 레이던에서 생산된 직물을 검사하고 거래하던 클로스 홀이었다. 직물 및 양모 담요 생산의 역사를 지닌 레이던은 직물 기반의 동시대 미술 작업을 선보이기에 안성맞춤이다. 장소, 역사, 재료가 서로 뒤얽힌 레이던은 김수자가 이번 작업을 선보이는 데 커다란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 뿌리

  • 보따리에서 수평은 말 그대로 수직과 교차하여 하나로 엮인다. 전통적으로 손수 만들어 결혼 선물로 주던 이불보에 가져갈 물건을 싸서 매듭으로 묶으면 보따리가 된다. 보따리는 (개인의) 삶, 필요로 하거나 애정이 담겨있는 물건, 기억, 이야기, 쓰인 재료의 기원, 문화 등 많은 것들을 나타내는데,그가 이런 문화적 기원을 분명하게 인식하게 된 것은 1978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였다. 그곳에서 김수자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음을 깨달았다. 한국의 고유한 문화는 무엇일까? 예술과 건축에서 특히 어떤 요소가 한국적인가? 특별히 어떤 식의 색채 사용이, 어떤 특정한 문화적 실천이 한국적인 것일까?[3] 그는 보따리에 관심을 쏟았고, 이후 보따리는 작업의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다. 김수자는 어떻게 이런 선택에 다다랐는지를 종종 이야기했다.

  • 명주 짜기를 하며 천에 깊은 애정을 품었던 김수자의 할머니는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천에 대해 느낀 이런 친밀함을 어떻게 작업에 접목시킬지는 어머니에게서 배웠다. 1998년 김어령이 쓴 글의 인용부에 그 사랑스러운 일화가 담겨 있다.

  • "어느 날 어머니와 이불보를 꿰매다가, 나의 사고와 감수성과 행위가 한순간 모두 하나가 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그러고는 묻어둔 기억과 고통은 물론 삶의 고요한 애정까지도 전달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냈다. 천의 근본 구조, 평면을 넘나드는 실과 바늘, 색색의 전통 천에 깃든 정서적이고 기억을 되살리는 힘에 매료되었다.[4]"

  • 1997년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는 김수자에게 어떻게 천으로 작업하게 되었는가를 물었다.

  • "1983년 나는 어머니와 이불보를 꿰매며 시간을 보냈다. 당시 나는 표면과 삶이라는 두 가지 개념을 모두 탐구할 적절한 방법론을 찾던 중이었다. 화가들은 언제나 표면을 가지고 씨름하는데, 나에게 표면은 좀처럼 넘을 수 없는 벽 같았다. 나는 그 벽을 넘어 표면의 뒷면에 다다르고 싶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그분이 입던 한복 전부를 간직해두었다. 옷을 보면 할머니가 떠올랐다. 이후 바느질로 나만의 예술 형식을 만들어보자고 마음먹었을 때, 이런 입던 옷들을 재료로 즐겨 쓰기 시작했다.[5]"

  • 김수자에게 보따리는 무척 개인적인 것이지만, 오래된 중고 천을 재료로 사용함으로써 김수자는 더욱 넓은 의미에서 삶과 연결되었다. 삶과 예술은 그에게는 불가분의 것이다. 이불보는 짊어진 짐, 즉 태어남, 사랑, 휴식, 질병, 죽음 등 삶의 전부를 감싸고 있다 이불보로 둘러싼 여러 종류의 천은 김수자의 어머니와 가족들의 옷은 물론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옷도 있었다. 그래서 보따리는 지극히 신체적인 성격을 가진다. 누군가 입었던 옷의 오래되고 얼룩진 천에서 착용자의 체취가 여전히 배어 나오고, 그렇게 그들의 냄새까지 꾸러미에 싸여 함께 여정에 나선다. <보따리 트럭>(1997)은 김수자가 트럭 짐칸에 쌓인 보따리들 위에 앉은 채 나선 11일 간의 여정을 담은 영상 작품이며, 이후에 내놓은 <보따리 트럭—이민자들>(2007-2009)은 가족과 수없이 이사를 다녔던 본인의 삶을 반영하는 동시에 난민, 이민자, 전쟁 지역의 현실을 시사한다. 두 작품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더 넓은 사회적 함의를 가지며, 예술-사회적 발언을 담았다.

  • 김수자가 처음으로 보따리에 주목하게 된 것은, 1992년 뉴욕 PS1 현대미술센터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보따리를 일상적인 유용한 도구가 아니라 하나의 예술적 오브제로 인식하게 되면서이다. 평소처럼 여러 물건을 꾸린 보따리를 공간에 무심코 두었는데, 그러다 시선이 보따리에 머물렀다. 그의 눈에 들어온 이 보따리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실용적인 오브제가 아니라, 고유의, 형태, 색상, 질감을 가진 3차원의 오브제로, 김수자에게 있어서는 만들지 않는(non-making) 예술로 읽혀졌다. 그것은 한국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오브제였다.

  • 바늘구멍

  • 도쿄 시부야의 거리를 메운 거대한 인파 속에 한 여성이 가만히 서 있다. 군중의 물결이 지나는 가운데 누구도 그녀의 존재에 주목하지 않는 듯하다. 중국 상하이에서 행인들은 이 조용한 인물을 어색하게 힐끔 쳐다보고 지나간다. 인도의 델리에선 행인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그를 빤히 쳐다본다. 김수자가 부동의 자세로 펼친 이 퍼포먼스는 삶과 사회의 연결고리를 드러낸다. '바늘 없이는 천도 없다'고 바늘 여인은 말한다. '또 개인 없이는 사회라는 직조물도 없다.'[6] 걸어 다니는 몸이란 옷감을 관통하며 움직이는 바늘과 같다. 이러한 연결을 가능하게 한 존재는 바로 이 바늘여인이다. 정체성과 그 사회적 함의에 대한 성찰은 김수자의 퍼포먼스가 보여주는 특징이다. 그는 <조우 - 바라보아 꿰매기(Encouter - Looking into Sewing)>(1998/2013)에서 보듯 <바늘여인>, <구걸하는 여인>, <집 없는 여인>에서 보듯 세상 곳곳 혼잡한 거리에 선 본인의 뒷모습을 영상에 담는다.

  • 상징적 바늘로서의 신체는 실제 실과 바늘로 하는 작업, 즉 양모, 명주, 면, 아마로 실을 잣고 염색하고 천을 짜고 꿰매는 그 오래된 필수적이고도 평범한 행위와 연계되어 있다. 유교적 전통에서 이는 대개 여성에게 속하는 일이고, 그래서 자연스레 여성이 김수자의 작업에서 중심 역할을 맡게 된다. 김수자는 페미니스트라 불리기를 좋아하지 않지만, 여성적 관점은 작업의 여러 요소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말한다.[7] 내가 보기엔 그렇다고 해서 작품의 정치적 성격이 줄어들지는 않는다고 본다. 다만 그러한 발언은 노골적이지 않고 미묘해서, 여성적 관점(바늘에 눈처럼 난 구멍), 여성의 존재, 삶과 분리될 수 없고, 없어서도 안되는 여성성을 이야기한다.

  • 물질과 영혼

  • 김수자의 작업에 드러나는 특징은 재료와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일어나는 행위와 반응이 강력하게 융합된다는 점이다. 이는 물리적 물질인 물감, 천, 직물, 금속, 유리, 자기, 거울, 흙, 대지에서부터,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비물질'인 색상, 빛, 공기, 움직임, 심지어 호흡에까지 이르는데, 그런 이유로 여러 작품에 <호흡>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이 두 가지 유형의 '실체'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내부/외부, 행함/그대로 둠, 움직임/정지, 단단함/부드러움, 반투명/불투명 등 김수자의 전 작업을 교차하는 불가분의 이항을 이룬다. 재료는 그의 공동창작자로, 그 안에서 우리는 재료-작가-행위의 또 다른 융합을 본다.

  • 한국 문화에서 색이 중요하듯, 김수자의 작업에서도 색의 역할은 중요하다. 예를 들어 밝은 진녹색, 금빛 도는 노란색, 자줏빛 섞인 자홍색은 전통 여성 한복에 자주 등장하는 색이다. 긴소매의 상의와 허리선 높은 긴 치마로 이뤄진 한복에는 종종 아름다운 자수가 놓여 있다. 시선이 작품의 한복 패턴을 따라가는 동안, 그녀의 작업은 하나의 사건이 되고 색상은 문화적 표지가 된다.[8] 이불보는 다섯 개의 기본 방위(동서남북과 중앙)와 이를 나타내는 색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이는 만다라와도 연관되는데, 불교의 이미지인 만다라는 이상적인 우주의 다이어그램 또는 상징으로 여겨진다.[9]

  • 김수자의 작품 활동은 회화에서 시작되었고, 페인터로서 느끼는 색과 그 표현력에 대한 친밀감이 김수자의 작업 전반에서 발견된다. 그는 때로 프리즘, 반사광, 빛으로 그림을 그리며, 때로는 천과 농작물로 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메타페인팅>(2020)에서 보듯, 최근의 몇몇 작업에서 김수자는 마치 모순처럼 들리겠지만, 색을 모두 내던지고 순수한 무색의 재료로 돌아선다. 메타-페인팅이란 명사이자 동사로서의 회화를 말하는 발언으로, 회화라는 예술 형식의 본질에 대한 고찰로 이해할 수 있다. <메타페인팅>에는 무색의 리넨을 씌운 나무 프레임과 더불어 리넨 천으로 싼 보따리가 여럿 등장하는데, 보따리 속에는 현지에서 구한 낡은 옷들이 들어 있다. 리넨 캔버스는 반투명해서 아주 옅게 빛을 통과시키고, 보따리는 단색으로 어느 때보다 오브제에 가까워졌다. 그렇게 하나의 예술적 주기가 완성된다. 순수한 재료에서 시작해 수많은 실험을 거쳐 본래 시작된 곳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씨 뿌려 그리기(Sowing into Painting)》에 드러나듯, 아마씨를 뿌리고 수확하여 가공하여 직물로 만드는 일, 즉 파종부터 바느질까지의 전 과정과 미학적 요소를 하나의 예술로 번역하는 평범한 행위가 곧 예술 작품이 된다.

  • 라켄할미술관의 감독관실에 들어서면 참여의 차원을 더한 또 다른 <메타페인팅>을 만나게 된다. 관객들은 김수자가 빈 리넨 캔버스 위에 배열해둔 천의 견본을 실제로 살펴보고 움직여볼 수 있다. 그렇게 관객은 작품의 구성을 끊임없이 변화시킨다. 말하자면 펼쳐진 보따리의 한복판에서, 함께 모이고 참여하는 장소에서 새로운 페인팅의 활동이 일어난다.

  • 우리는 다시 천의 네 귀퉁이를 모아 매듭을 묶는다. 보따리는 다시 꾸러미가 되고, 축소된 세계가 담긴다.

[각주]
[1] See Kimsooja: Sowing into Painting, ed. Justus Kewenig and Cinta Villapadierna-Kewenig. Co- published by The Wanås Foundation and KEWENIG, Berlin 2023. Catalogue accompanying the exhibition of the same name at Wanås Konst sculpture garden in Sweden, 9 May – 1 November 2020, pp. 20-21.
[2] 김수자는 석사 논문에서 현대미술에서 십자형(와 십자가)이 갖는 의미와 전 세계적 보편성을 집중하여 다루었다. (한국 서울 홍익대학교 회화과 석사 학위 논문). 각주 1을 참고하라. Kimsooja: Sowing into Painting, p. 24.
[3] Youngtaik Park, From Plane to Three Dimensions: A Bundle, 1996. Available at: http://www.kimsooja.com/texts (accessed 23.01.24).
[4] Airyung Kim, Soo-Ja Kim: A solitary performance with old fabric, 1998. Available at: http:// www.kimsooja.com/texts (accessed 24.01.24). Essay in exhibition catalogue Echolot, Kunsthalle Fredericianum, Kassel, 1998.
[5] Hans Ulrich Obrist, Wrapping Bodies and Souls’ 1997 (interview with Kimsooja). Available at: http:// www.kimsooja.com/texts (accessed 23.01.24), previously published in: Flash Art, Vol. XXX No.192. January - February 1997.
[6] Kimsooja in: Christina Arum Sok, Kimsooja: A Modern Day Global Nomad. Transcending boundaries, re-constructing a global identity, 2014. Available at: http://www.kimsooja.com/texts (accessed 23.01.24).
[7] 이러한 입장은 다음 글을 비롯해 김수자에 관한 여러 글에서 확인된다. Hyunsun Tae, ‘Kim Sooja: A Needle Woman’, 2000. Available at: http://www.kimsooja.com/texts (accessed 24.01.24).
[8] Joan Kee, What is Feminist About Contemporary Asian Women’s Art?, in: Maura Reilly, Linda Nochlin (ed.), Global Feminisms. New Directions in Contemporary Art. London/New York: Merrell, in collaboration with Brooklyn Museum New York. On the occasion of the exhibition of the same name at Brooklyn Museum 23 March -1 July 2007, (pp. 107-121) p. 114.
[9] 2023년 4월 20일 덴마크 루이지애나현대미술관이 운영하는 '루이지애나 채널'에 공개된 <빛의 직조(Weaving the Light)>(2023년 4월 20일)에서, 김수자는 한국 문화의 오방색 개념을 설명한다. '오'는 숫자 5를, '방'은 방위를, '색'은 색상을 뜻하는 말로, 전통적 색상 스펙트럼을 가리킨다. 오방색은 다섯 개의 기본 방위(네 개가 아닌 까닭은 중앙도 하나의 방위로 포함되기 때문이다)와 연관되는데, 황색은 중앙을, 흑색은 북쪽을, 청색은 동쪽을, 적색은 남쪽을, 백색은 서쪽을 나타낸다. 한편, 5라는 숫자는 계절, 구성 원소(목, 화, 토, 금, 수), 맛(신맛, 단맛, 짠맛, 매운맛, 쓴맛)을 상징하기도 한다.


— 개인전 도록 수록 글. 『김수자 – 실의 근원』, 라켄할 시립미술관, 라이덴, 네덜란드, 2024, pp.10-27.
영한 번역: 이재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