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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평면은 화가에게 있어서 하나의 불가항력적인 벽과도 같으며 회화의 역사는 곧 이 벽을 향한 끝없는 도전의 역사라고 볼 수도 있다.
나는 이 벽이 나 자신과 하나가 되기를 바라기도, 또한 그 벽을 넘고자 염원하기도 한다.
다행히 내가 선택한 이 벽은 바느질도 할 수 있고 사물을 감쌀 수도 있으며 접거나 묶을 수도 있다.
벽은 무한히 변용(Transfiguration)된다. 그리고 그 변용은 매우 논리적이다. 논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반드시 논리적인 것은 아니다. 다시말해 논리를 위한 논리가 아닌 감성의 논리에 의한 작가의 행위가 변용을 가늠하게 한다. 나에게 있어 그 변용은 천을 '꿰매기' '감기', '싸매기' '풀기' '끼우기', '찢기' 등의 일상적인 매개 행위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천을 매개로 한 이러한 일상적인 행위는 주로 '여성의 일들과 관련되어 있다.
천을 꿰맨다(sewing)고 했을 때, 천은 하나의 객체, 그리고 꿰매는 자는 주체가 된다.
이때 천이라고하는 오브제를 뚫고 지나가는 실의 궤적은 곧 일체를 향한 행위자의 신체이자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꿰매기의 반복은 결국 내가 통과하는 그 천의 평면성에 대한 끝없는 물음이며, 이러한 물음의 연속 속 에서 이루어지는 천의 집성은 차원의 변화를 통하여 새로운 평면의 위상과 당위성(necessity)을 향해 운동한다.
한편, 천들의 집성으로 또 다른 평면을 형성하는 평면작업의 귀납적(inductive)인 성격과는 달리, 오브제에 천을 감는 작업은 기본 구조를 변형시키지 않고 예의 완결된 오브제가 갖고 있는 미학적 구조로부터 그 단위를 해체 내지 분절해가는 의식 속에서 이루어지는 분석적인 확인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오브제 작업은 평면 작업의 역으로 이행되며, 또한 그런 의미에서 오브제 작업을 나는 '연역적 오브제'(Deductive Object)라고 부른다.
따지고 보면 오브제에 천을 감는 행위도 꿰매기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천을 꿰맨다함은 2차원이자 3차원, 즉 평면이자 입체인 천이라는 오브제를 펜다는 것을 의미하며, 다시말해 그것은 오브제에 천을 감는 행위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천으로 감겨진 굴렁쇠들이 원운동을 하며 다시금 공간을 꿰는 일련의 설치작업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그 외에도 벽돌 틈새로 천조각 끼우기, 보따리 사기, 풀기 등으로 이어지는 나의 작업은 늘 일상적인 행위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그 일상적인 행위 속에서 회화의 논리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도 '여성의 일'에서 잘 드러난다고 생각된다.
여성의 일상은 평면작업, 입체작업, 설치작업, 그리고 행위예술로 점철되어 있다.
즉, 의생활(clothing), 식생활(cooking), 주 생활(housing)에 있어서의 시각적인 체계는 현대미술의 단면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빨래하기, 빨래짜기, 널기, 개키기, 다림질하기, 바느질하기, 실감기.
방쏠기, 방닦기, 먼지털기, 집안 꾸미기.
밥짓기, 장보기, 요리하기, 상차리기, 그리고 설거지 하기 등 등……
현대미술의 구조적 논리가 이 속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한 이 모든 세부사항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감상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논리적이고도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일상의 단조로움을 깨워주는 비일상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상, 혹은 여성의 일의 개념화(Conceptualization)이나.
동시에 그 과정을 통해 나 스스로를 소멸시키는 작업이다.
— 그룹전 도록 수록 작가노트. 『여성 그 다름과 힘』삼신각, 서울, 한국, 1994, pp.80-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