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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Choi Yoonjung

2012

1.

  • 최윤정
    대구미술관 마지막 개관특별전에 참여해주셔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대구가 고향이다보니 감회가 새로울 듯 한데, 참여에 대한 소감을 부탁한다. 이것이 대구에서 첫 전시인가?

  • 김수자
    이전에 대구에서 작업 한 바가 있다. 아마 70년대 말, 대구일보사에서 주최한 ‘대구현대미술제'로 기억하는데, 그때 김용민 선생과 함께 이벤트를 한 적이 있다.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함께 와서 오렌지색 조끼를 입고 야외를 다니면서 각자 서로 얘기하지 않고 무엇이든 채취를 하는 행위였다. 매일신문사 갤러리에서 전시하게 되었고, 채취한 오브제들을 그곳에 설치하였다. 그때 들에서 주운돌, 모래 그리고 마늘, 나뭇가지들을 가지고서 조그만 돌무덤 같은 것을 만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이후로 처음으로 대구에서 하는 전시이자 첫 개인전이다. 그래서 사실 감회가 깊고 또한 대구 관객들, 시민들을 내 작품을 통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점에서 나에게는 특별한 전시이다.

  • 최윤정
    이번 전시작품은 '바늘여인(2005)'이다. 1999년도에서 2001년도 바늘여인 첫 번째 시리즈가 많은 군중들이 집결해있는 장소에서 '바늘'로서 몸을 인식하고 또한 '바늘여인'으로서 행하는 일종의 성소적 의식이었다고 볼 수 있다면, 2005년도 작품에는 또 다른 의미들이 부가된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입장에서 두 시리즈 사이의 차이를 설명해달라.

  • 김수자
    초기 '바늘여인'은 내 몸이 하나의 상징적인 바늘 또는 매개체로서, 하나의 '공간의 축'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주로 찾아가 멈추어 섰던 장소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거리, 특히 메트로폴리스들(도쿄, 상하이, 뉴욕, 런던 등)이었고, 거기에서 모두를 만나고 그들을 포옹한 마음을 리얼타임 퍼포먼스로 펼쳤다. 2005년도 작품은 같은 퍼포먼스임에도 불구하고, 초기 리얼타임으로 보여지는 퍼포먼스가 아니라, '슬로우 모드'로써 이제는 내 몸을 '시간의 축'으로 삼는다. 그래서 나의 몸(정지의 시간성), 슬로우모드(확장된 시간성), 그리고 관객(리얼타임)의 시간적 차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심리적인 차원의 변화들을 더 심도있게 들여다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나 종교, 문화 그리고 경제 등 갈등적 요인을 상징하는 나라들을 찾아보았다. 포스트콜로니얼리즘에 대한 쿠바, 차드 그리고 빈곤과 폭력 이런 것들에 노출이 되어 있는 리우 데 자이 네이루, 종교적 문화적 갈등을 겪고 있는 예멘의 사나와 또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시민전쟁 등이 벌어지고 있던 네팔 파탄. 이것은 인간의 조건(condition of humanity)에 대한 의문을 바탕으로 한다. 이라크 전쟁이후 혼란과 폭력이 난무하는 세계 속에서 평화를 갈망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분쟁과 불화와 빈곤과 갈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로우 모드'로 시간을 연장시킴으로써, 각 도시들이 한 공간에 놓여있는 경우, 그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보편적인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

  • 최윤정
    원래 이 작품은 벽면에 모두 함께 연속적으로 설치되는 형태를 갖는다. 작품과 고유한 설치 방식이 갖는 연관성에 대해 좀더 이야기를 듣고 싶다.

  • 김수자
    사실 각 도시들은 각기 다른 특징적인 문제들을 안고 있다. 그것들이 한 벽면에 한 공간에 놓여져 있을 때, 그리고 그 시간을 슬로우 모드로 표현해 보일 때, 실재하는 문제들이 유화되어 풀어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러고 나면 남는 것은 가장 본질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어쩌면 인류 전체가 갖고 있는 보편성과 원형성을 비추고, 또한 화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표현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갈등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을 유화된 모습으로 함께 보여준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도 하겠지만, 사실 그러한 세계를 향하는 내 시선의 지평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또한 의도이다. 그래서 그 부분이 이 작품의 비주얼한 요소로서 중요하다.

  • 최윤정
    작품을 보면 '축'으로서 보여지는 작가의 몸, 이를 통한 퍼포먼스 장면을 통해 작품의 의미를 헤아리게 된다. 또 한편으로 작품을 감상하다보면 각 나라마다 각 도시마다 군중의 반응이 참 재미나다는 생각이 든다. 촬영현장에서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을 것 같다.

  • 김수자
    예멘에서의 작업을 얘기하자면 내가 퍼포먼스하고 있는 그 거리는 굉장한 시장통이었다. 많은 상인과 행인들이 지나가고 있었고 이제 그 중에는 씨디나 테잎을 판매하는 뮤직숍도 있었고, 거기서 그곳 특유의 음악들이 흘러나 오고 있었는데, 퍼포먼스하면서 뒤돌아 서있었으니 그때는 몰랐지만, 내 뒤에서 어떤 노인이 예멘 남성이 복부에 차는 초승달 모양의 칼을 빼고 춤을 추고 있었다. 얼핏 보면 폭력적이고 위험한 장면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예멘의 전통적인 춤 예식, 결혼식 혹은 축제 때 추는 춤이었다. 그곳만의 문화적인 행위로 나에게는 정말 흥미로웠다.

  • 최윤정
    반면에 직접적으로 위험한 순간에 노출 된 적도 있었는가.

  • 김수자
    네팔 카트만두 인근 파탄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시기는 시민전쟁이 벌어졌던 때였다. 그때 한국영사관, 외국영사관 직원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고 그러한 상황이었다. 알아보는 데로 크게 위험한 상황은 아니겠다 판단해서, 떠나기로 결심을 하였다. 카트만두 골목 곳곳에 무장한 군인들이 서 있었고 내가 묵었던 호텔 인근에서조차 총성이 들려왔다. 사실 그 주변에 있었던 마오이스트들과 정부간 분쟁이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어서 위험한 상황이었다.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는 로시나(Rocinha)라는 빈민촌으로 가장 큰 슬럼가(favela) 중 하나였다. 거의 반라의 젊은 청년들이 양 허리에 권총을 차고 각 골목 코너에는 마약 중개상들이 앉아있기도 하였다. 어느 날 옥상 위에 올라가서 그 빈민촌 주택들이 빼곡히 둘러싸여 있는 산 전경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그리고 바로 맞은 편에서 총성이 울렸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몰라 불안하였는데, 알고 보니 마약 중개상들이 서로를 위협하는 총성이었다.

2.

  • 최윤정
    비평자료들, 인터뷰 자료들을 찾아보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내 나름으로 꼭 이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 작가 김수자와 작업에 관련해서 '샤먼', '샤먼적', '샤먼적인 행위'를 거론하는 경우가 있다. 아마도 작가의 퍼포먼스가 인간과 인간을 매개하거나 세상과 세상을 매개하는 매개자, 수행이 느껴지는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이와 같은 표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

  • 김수자
    글쎄.. 80년대에 아주 원색적인, 한국 고유의 오방색 천들(혹은 민속오브제)을 사용해서 매고 감고 꿰매고 감싸는 행위들을 할 때, 나는 내가 품은 어떤 에너지가 샤먼적이라고 느낀적이 있다. 그러나 사실 샤먼이라고 한다면 일종의 종교적인 행위이고, 오히려 나의 경우는 이를 불교의 '선(zen)'에 더 가깝지 않은가 생각한다. 처음 도쿄 시부야에서 워킹walking퍼포먼스를 하려고 하다가, 어느 순간 시부야의 수많은 인파들이 오고가는 것을 목격하면서, 그 순간 그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고 내부에 쌓여있는 '외침들이 마치 침묵의 회오리처럼 나를 감싸 안았다. 작가의 예술 행위에 결정적인 순간은 바로 그러한 경험에서 생성된다고 본다. 그것이 설명할 수 없는 에너지 그리고 그 에너지와 시간과 공간을 완전히 파괴하는 듯 초월하는 행위로서 예술가의 창작을 보다 잘 설명하는 것이 아닐까.

  • 최윤정
    마찬가지로 내가 주목한 바는 행위자로서의 샤먼보다도 이를 문화원형적인 측면, 인 문학적인 요소와 연결지어 독해할 수 있지 않은가에 대한 부분이었다. 관련해서 동양의 문화
    가 가지고 있는 샤먼 역사의 기원, 그것이 유불선 사상과도 연결되는 문맥이 있고, 그 역할이 유교의 성인, 노장사상에서의 신선과도 원형적 으로 문맥상 연결이 된다. 흔치 않으면서 아주 흥미로운 주제였다. 이것은 현대예술가에 대한 해석을 풍부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 김수자
    이것은 우선적으로 예술적인 행위이자 동시대미술사 내지는 퍼포먼스의 문맥 안에서, 내가 어떤 관점을 우회적인 방식으로 선보일 수 있는가 전반을 고민하여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샤먼' 즉 전적으로 접신이나 에너지 의 측면에서만 볼 수 없는 다양한 측면을 고려 할 필요가 있다. 구조적으로는 기독교적 측면, 불교, 도교적인 측면도 포괄한다고 본다. 그리고 다른 시각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4개의 관점. 제가 그 4방 혹은 8방을 향해서 바늘여인 퍼포먼스를 했다고 한다면 그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행위는 사방을 향한 '인류애'의 행위 그리고 그 인류애가 어디까지 위치지어져야 하는가를 일종의 시어로 표현한 수피즘도 있다. 즉 우리 문화의 어떤 한 현상으로 보기보다는 아주 복합적이고 다각적인 해석을 결합할 필요 가 있다.

  • 최윤정
    보통은 분쟁적인 요소가 있는 지역이라면 혹자는 작가의 퍼포먼스를 일종의 저널리즘으로서 사태를 인식시키는 내용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 김수자
    나는 사회 변혁을 위한 도구로서, 사태 자체를 직접적으로 선동하는 그러한 부분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단지 그러한 문제점들을 늘 인지하고 있고, 바라보는 자로서 또한 바라볼 수 있게끔 매개하는 입장에 서있다. 이는 각각을 일대일 관계 안에서 해결해 보이려는 게 아니다. 관조하면서도 초월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바다. 그 다음은 관객의 몫이다. 개개인의 경험과 감수성, 또 지적능력에 따라 각기 다른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 최윤정
    노마디즘에 대해 말하고 싶다. 기존 인터뷰 내용들을 보니, 작가는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종의 현대인의 라이프 스타일로서 언급했던 바가 있다. 오히려 비평가들은 이동과 이주를 상징하는 보따리와 노마디즘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고 있는데, 이진경은 휘트니 비엔날레 시기, 테이블에 우리나라 전통 천을 씌웠던 작품을 보고 그것이 과연 노마디즘적이다라고 말한다. 이에 공감하는 바다. 오히려 이동이나 이주 및 정주를 상징하는 보따리보다는 자기 정체성, 습득하고 있는 고유한 문화 등이 이질적인 곳에 전통문양의 테이블보를 덮어씌움으로써 그 안에서 충돌하면서 새로운 가치가 생성된다고 보는 것이다.

  • 김수자
    나 역시도 그러한 시각에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또한 물론 거기에는 내 행위의 어떤 프로세스가 노마딕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한 의미에서 휘트니 뮤지엄에서 천을 펼쳐놓았건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보따리 트럭을 가져다 놓았건 어쨌건 간에 그 또한 노마딕한 행위의 부분으로 드러날 수 있다. 어차피 현대인들 모두가 라이프스타일로서 노마딕한 삶을 살지 않을 수가 없는 시대이다. 그래서 현대의 노마디즘은 과거의 유유자적하고 자연친화적인 것이기보다는 실용적 의미에서 숨가쁜 도회적 사업(Urban global business)에 가깝다. 쉴새없이 세계적으로 소통하고 무소부재한(Omnipresent) 노마디즘이 횡행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내 작업은 그야말로 자연과 관계를 맺으면서, 개인의 삶의 방식과 필요성들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펼치고 떠나가는, 노마디즘이라는 어휘조차도 필요하지 않은 그런 곳에 있다. 삶 속에서 저 개인의 고민과 문제점이 자연스럽게 펼쳐진 결과이다. 애초 노마디즘 자체 프레임 안에서 이루고자 했다든지 문화적인 문맥으로 의도한 바는 없었다.

  • 최윤정
    이번 바늘여인(2005)에 대해서 실은 전작들, 광주학살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작업 (1995), 코소보 내전의 희생자들에게 헌정하는〈d'apertutto or Bottari Truck in Exile>(1999),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희생된 흑인들의 이름을 기록설치한 〈Planted Names>(2002)과 어떤 연계선상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올리바 마리아 루비오의 평문에서도 와닿는 부분이었다. 담고자 하는 내용들 자체에 이미 태도적으로 엑티비스트 Activist로서 면모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 김수자
    혹자는 내 작업을 민중미술로 읽기도 하였다. 내 작업은 모더니즘과 민중적인 부분들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미학적으로 추상과 구상 두 양식 과의 평행선에 있다고 보고, 나는 추상적(형식적) 영역과 구적 (현실적)영역을 함께 다루어 왔다. 어떤 집단적 운동(모더니즘 혹은 민중미술)이나 단체와 연계하지 않은 채, 철저하게 독립적으로 내 길을 택해왔다. 그리고 민중미술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의 경우 시대적 모순 정치적 현실을 기반으로 일어난 것이지만, 사실 나에게는 개인의 문제, 특히 제 개인의 존재론적인 열정이나 자기모순, 자기애가 그보다 우선이었다. 십여 년간 바느질sewing 작업을 행했던 그 모든 과정들을 열정을 보이고 자기에 대한 치유과정이었다고 한다면, 어느 순간 그 치유가 완료되었다 생각한 순간부터 나는 타인에 대한 치유에 많은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 물론 바느질 작업을 하면서도 '나'라는 개인은 항상 뭐라 그럴까. 나의 보이지 않는 스토리나 아이덴티티를 드러내기 보다 타인의 몸을 빌려 즉 타인의 고통을 빌어서 나의 고통과 열정들을 담아왔기 때문에, 바느질이라는 물리적인 치유는 '바늘여인'이라는 행위하지 않으면서 치유하는 방식으로 변화되었다. 노마딕하다는 것 자체도 늘 자신의 자리를 버리는 자의 입장이 된다할까. 그래서 자신의 자리를 설정하고서 자기만의 성을 쌓는 게 아니고, 항상 자기 부정을 통해서 또 다른 세계로 자기를 열고 또다시 해체하고... 이러한 무수한 과정 들을 끊임없이 겪게 되는 행위들, 그러한 행위 가 또 다른 형태의 문답으로 자신에게 되돌아오기도 한다.

  • 최윤정
    바느질 작업 이전 시기 예술가로서 자기로서 내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상황들로부터 비롯된 문제의식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 과정이 지금 현재까지 이어져 '매개'와 더불어 본인과 세계, 인간과 인간, 자연의 요소적 관계에까지 소급해가는 것으로 보이는데, '관계'에 대해 보다 심도있는 의견을 듣고 싶다.

  • 김수자
    사실 최초의 바느질 작업 자체가 하나의 관계에 대한 시각적인 표현이었다. 일종의 예술가의 진술로서 늘 처음부터 지금까지도 견지 되고있는 바다. 화가로서의 입장이 천이라는 따블로(Tableau)와 바늘이라는 상징적인 붓(brush), 도는 작가의 몸(body)을 통해 견지되어 왔던 바이고, 바느질은 따블로/평면에 대한 물음으로 점철되었고 그 평면은 타자(the other)이자 거울(Mirror)이었다. 그래서 바느질 행위는 자아와 타자의 구분을 넘나드는 행위이고, 이에 대해 의문을 갖고 답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형식상에서 회화에 대한 문제를 의인화시킨 것이라 보면 어떨까 한다. '평면'이 '인물'이 된 것이다. 내가 그동안 회화의 형식적인 탐구를 해온 것과 동시에 삶과 인간에 대한 탐구를 평면을 빌어 해 올 수 있었던 것도 알고 보면 조형적 양상과 삶의 양상이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3.

  • 최윤정
    장르의 폭이 넓다는 생각이 든다. 설치 작업에서부터 영상작업, 사운드 작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르와 형식들에 대해 다양하게 접근하고 있는데, 혹여나 각각의 장르 선택에서 의도하는 바가 있는가.

  • 김수자
    글쎄... 바느질sewing에서 오브제를 감싸는wrapping 작업으로 넘어가고 또 그것이 '보따리'로 감싸는 작업으로 넘어갔을 때, 그것은 사실 내가 어떤 논리나 미리 계획된 아이디어에 의해서 결정을 하는 것이기 보다는, 아주 즉각적인 반응에 더욱 근접한다. 거의 순간적인 예술충동이자 제 고유의 예술의지로 쌓여왔던 것이고, 그런데 또한 되돌아보면 그 안에 내적인 논리나 감수성 역시 있었던 바다. 그래서 감싸는wrapping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최초로 의문을 갖곤 하였던 평면성과 바느질의 속성, 바느질 행위가 지니는 속성 안에 이미 그 감싸기wrapping의 속성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저절로 내 몸 속에서 풀어져 나온 것으로 생각한다. 평면적인 보따리 bottari로서 어느 순간 내 안으로부터 발견이 되었던 것이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예술 충동에 의해서 연결이 되기도 하고, 뭐랄까 무엇으로부터인가 이끌린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의도라기보다 이끌려 행할 수밖에 없는 그리고 그 행위가 결국은 다음 작업의 근거가 되어준다. 보따리 이후에는 새로운 공간의 체험을 통해서 그에 맞는 아이디어나 매체에 대한 실마리를 더욱 풀게 되었다. 이를테면 직조공장 위빙사운드를 생각해 냈던 것은 폴란드 우지(Lodz)에 비어있는 직조공간을 보면서 순간적으로 내 몸과 직조기계의 움직임을 병치하면서 들숨날숨과 직조의 유사성을, 또 음양의 요소나 삶과 죽음의 경계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호흡(Breathing)사운드 퍼포먼스를 2004년도 우지비엔날레(Lodz Biennale)에서 선보이게 된 것이다. 나는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선택과 적용 의도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새로운 공간을 만나면서 혹은 새로운 문화, 문화적 원형, 자연적 구조 상에서 새로운 발상을 떠올린다. 그것은 미디어/장르를 발견하는 것보다 기존에 갖고 있던 나의 질문과 고민들을 더 심화되는 바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선상에서 미디어가 발견된다는 표현이 더 적합 할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선택하는 미디어는 작업개념의 심화에 따라 시작된 것이지, 미디어/장르 자체에 대한 것은 아니다. 비디오 작업 역시도 카메라렌즈가 세상과 사람을 잇는 선상에서 개념적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에 시작된 바다.

  • 최윤정
    주로 해외를 중심으로 많은 활동을 선보이고 있다. 내년 전시 일정 및 지금 현재 진행 하고 있는 혹은 의미있게 바라볼 만한 프로젝트를 소개해달라.

  • 김수자
    내년에도 유럽과 아시아 미국에서의 몇몇 개인전과 단체전이 기획되어 있다. 로잔의 IOC올림픽 미술관과 아리조나와 멕시코 국경에 설치할 미국정부에서 커미션한 비디오 설치 작업들로 쉴 새 없이 일해야 할 것 같다. 그 외에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바늘여인의 대척점에 있는데, 바늘여인이 바늘의 궤적을 찾는 작업이라면, '실의 여정(Thread Routes)이라는 실의 궤적을 추적하는 작업이다. 'Thread roots'로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Roots(근원)로부터 Routes(길)에 도달하는 삶의 여정이라고 할까.

  • 대구미술관 프로젝트룸(B1F), 2011년 12월 5일 월요일
    참여: 김수자 작가/ 진행 : 최윤정 큐레이터

─ Interview on December 5, 2011. from Exhibition Catalogue 'Kimsooja' published by Daegu Art Museum, Korea. 2012, pp.404-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