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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심 가속도

김승덕

2013

  • "내적인 삶의 적절한 위치는 오로지 외부 현실과 만족스러운 관계를 구축하지 못한 실패에 의해서만 정의된다." - 장 스타로뱅스키 (Jean Starobinski), 『장 자크 루소: 투명성과 장애물 (Jean-Jacques Rousseau: Transparency and Obstruction)』, 1957

  • 당연하게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은 설명이 불가능하다. 재료, 시공 계획, 전시 방식에 관해 상상 가능한 모든 정보를 갖추고 있더라도 말이다. 우리는 모든 시각적 요소를 하나하나 집중적으로 실험했다. 바닥과 천장에 사용할 알루미늄 거울 패널 표본을 확인하고, 추운 11월 어느 날 한국관 창문에 회절 격자 필름을 붙였으며, 무반향 암실용 흡음(sound-absorbing) 폼을 시험해 보거나, 가방이나 양말, USB 등 전시 ‘굿즈’ 아이디어를 위해 중국 웹사이트에서 몇 시간을 보내고, 보자기 천을 찾기 위해 서울 동대문 야시장에 다녀오기도 했다. 사실 이전 전시에서도 비슷한 작업을 거치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모든 요소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전시 전체를 현지 시공팀이 담당한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직접적으로 예술 작품을 암시하는 부분은 없으나, 무형의 설치 작업을 위해 방대한 양의 재료가 투입됐다.

  • 예술에서 역설이란 흔하지만, 김수자의 경우에는 매우 극단적이다. 바로 이 부분이 그의 작업을 흥미롭고도 도발적인 것으로 만든다. 사전에 미리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없고, 제대로 전달되고 경험되려면 완성이 되어야만 한다. 그 어떤 모형도, 컴퓨터 생성 이미지(CGI)도 최종 형태를 제시하지 못한다. 작가에게 이것은 하나의 방법이자 평생의 작업이지만, 큐레이터에게는 어느 정도 유보된 행동이 요구된다. 우리는 서서히 재료의 강점과 효과를 인지하고 천장과 바닥에 비친 반사광을 지긋이 파악해 나갈 것이다. 또한 두껍고 무거운 암면, 석고보드, 고무 코팅, 날카로운 피라미드 폼에 흡수된 소리를 점차 헤아리게 된다. 잠재적 상태는 4월과 5월 내내, 사운드 설치에 마지막 손길이 더해질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작가의 목소리는 유기적인 신체적 호흡과 함께 전시장 전체에 스며든다.

  • 구조적 수정, 증축 또는 변경을 가하지 않고 김석철의 건축물 안에서 작업하기 위해[1], 김수자는 파빌리온의 금속 골격에 일관된 형태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회절 격자 필름이 벽과 지붕의 유리창을 덮을 것이며, 알루미늄 거울 패널은 바닥에 부착되고 천장에 고정된다. 작가의 목소리는 중앙 공간을 감싸고, 무반향실이 남측의 벽돌 파빌리온에 위치하게 된다. 공간의 부피는 이렇게 확장될 것이다. 겉면은 투명한 새장 같던 초기 공간을 반투명하게 회절한 빛의 그물로 변형시키고, 이는 무지개색으로 회절되어 무한한 반사를 통해 속도를 더한다. 윙윙거리는 소리와 호흡이 이 공간을 만화경같은 볼륨으로 가득 채우고, 어두운 무반향실은 관객의 신체 깊숙한 곳에 색채 경험을 숨겨둘 것이다. 이번 비엔날레를 위한 김수자의 프로젝트 <호흡: 보따리>는 독창적일 뿐만 아니라 그의 작업 세계에 완벽히 부합한다.

호흡

  • 우리를 폐로 좋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약해진 공기를 내뱉으며 균형 잡힌 행동을 지속한다. 우리의 신체는 이처럼 생명의 연료를 포착함으로써 작동한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또 다시 내보낸다. 기체의 가장 좋은 부분은 취하고, 약해진 나머지는 버리는 것이다.

회절/반사

  • 빛은 표면에서 표면으로 굴절되어 이미 회절한 상태에서 다양한 모습을 갖게 될 것이다. 무지개처럼 번지는 빛은 미술사적 회상을 가능케 할까? 야요이 쿠사마(Yayoi Kusama)풍의 무한 거울처럼 보일까? 성인 크기의 만화경이 떠오를까? 아니면 일종의 광선요법을 제공하는 엔진으로서의 건축 같을까? 관객은 당연히 여기에 포함된다. 아무도 없다면,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 전통에서 쓰이던 밝은 색채, 단색, 원색 등은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상 곳곳에 있다. 빨강, 노랑, 파랑, 흰색, 검정, 이상 ‘오방색’이라고 불리는 다섯 가지 색은 말 그대로 오방(五方)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여겨진다. 한국어로 오방은 ‘다섯 방향’을, 색은 ‘색깔’을 의미한다. 오방은 북, 남, 동, 서, 그리고 이 네 방위의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방향에는 고유한 색이 존재한다. 먼저 북쪽은 검정과 연관되어 있으며, 이는 겨울, 물, 신장, 짠맛, 슬픔, 지식을 상징한다. 남쪽의 경우 여름, 불, 심장, 쓴맛, 즐거움, 예의범절을 의미하는 빨강과 관련된다. 동쪽에는 파란색이 부여되는데, 이는 봄, 나무, 간, 신맛, 기쁨, 자애를 상징한다. 서쪽은 가을, 금, 폐, 매운맛, 분노, 의로움을 의미하는 흰색과 연관된다. 마지막으로, 중앙은 비장, 흙, 단맛, 탐욕, 지혜를 뜻하는 노란색이다. 이러한 상징성을 넘어, 이불보와 베개 등 여러 용도의 직물에서 발견되는 위 색상은 기하학적 패턴과 질서 속에 담긴 원색, 즉 데 스틸(De Stijl)의 이상에 흠뻑 젖어든 이들에게도 강렬하게 다가간다.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n)과 테오 판 두스부르흐(Theo van Doesburg)의 유령은 한국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셈이다. 자연스럽게, 김수자는 색채에 관한 전통적이고도 현대적인 주제를 다뤄왔으며 지금도 다루고 있다. 이는 권위주의적 제약의 부담이 되기 쉬운 전통이 아방가르드적 참조점과 조화를 이룰 때 도움이 된다.

보따리

  • 김수자의 작품에서 보따리는 원초적이고 모성적이며, 따뜻하고도 이야기를 지닌 것, 나아가 형식주의적이고 모체와도 같으며, 기본적이지만 빈티지와 키치이기도 한 것, 저렴하면서도 소중하고 유연하고 무한한 것으로 해석된다. 보따리란 천 조각을 뭉쳐서 말아 만든 것이다. 다시 말해, 포장되고 감싸인 무언가다. 비록 여러 조각의 천이 동어반복적 주머니 속에 함께 말려 있을지라도 말이다. 1990년대에는 <연역적 오브제>가 많은 공간에서 전시되었는데, 특히 1992~1993년 레지던시 기간에는 뉴욕 PS1에서 소개되었다. 일부 작업은 파리 유학 시절의 영향을 산발적으로 담고 있는 반면, 다른 작품은 미국이라는 신대륙의 문화 예술적 특수성을 포착하며 독자적인 길을 개척했다. 김수자의 작업 중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 하나 있다. (117, 132쪽 참조)[MC2] 이는 조각적 오브제나 2차원 캔버스형 작업에서 벗어나 장소 특정적 환경으로의 전환을 보여준다. 벽 전체를 차지한 이 작품은 벽돌 사이의 미세한 틈에 색색의 천 조각을 찢어 넣은 신중하고도 정밀한 설치였다. 이는 성스러운 장소를 떠올리게 한다. 유대교나 불교 등 여러 종교에는 기도와 명상에 글을 활용하는 전통이 있다. 예루살렘 성벽 틈새에 기도문이 적힌 쪽지를 끼우는 관습이나 나무에 로크타(Lokta) 종이 깃발을 걸어두는 티베트의 풍습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에서는 종이 대신 천 조각이, 기도문 대신 색채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 이로써 기억의 서사와 비밀을 다루는 것이다.

투명성과 방해

  • 김수자의 작업은 아마 드러내고 밝혀내는 행위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종이 조각이 남겨지고, 비밀의 집합체가 꾸러미로 포장되며, 영상 작품에서는 작가의 뒷모습이 보인다. 김수자는 모든 것이 드러나고 기억되지 않는 현대 세계의 투명성에 기꺼이 참여하지 않는다. 그는 얽히고설킨 직물 깊숙한 곳에 서사의 층위를 간직한다. 작가가 영상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이는 세계 곳곳의 시끄러운 거리에서 군중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관객이 결코 볼 수 없음을 의미한다. 에티엔느-쥘 마레(Etienne-Jules Marey)의 시적인 과학 실험, 일례로 사각형 장애물을 이용해 유체의 역학을 시각화한 것과 같이 작가는 흐름 속의 한 방해물처럼 서 있다. 장애물이, 즉 여기에서는 고요히 서 있는 한 여성이 이동하는 인간의 속도를 얼마나 늦출 수 있는지 연구하고자 한 것인가? 회색 옷을 입은 그 여성은 군중의 움직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가? 종종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 어떤 속도 저하도 일으키지 않은 채 존재한다. 스위스의 프랑스 문학 교수이자 사상사학자인 장 스타로뱅스키는, ‘투명성’에 대한 진솔한 열망과 ‘방해물’을 만들어내 수동적 체념을 불러일으킨 좌절 사이에서 장 자크 루소가 겪었던 지속적인 불균형 상태를 분석한 바 있다.

  • 형태상의 모순은 대체로 해결되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김수자의 작품에서 역설은 엔진이자, 피난처와 안식처를 구축하는 도구다. 그의 공간은 소위 ‘예술 구호품’이나 지친 예술 여행자를 위한 보금자리가 아니라 에너지 배터리다. 투명성은 그저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투명해지는 것은 관음증 환자의 궁극적인 꿈이다. 비밀은 없고, 모든 것이 드러나 욕망에 닿을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현대의 건축은 유리를 대형 및 대량 생산하고 내구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 이후로 이를 위해 사투를 벌여 왔다.[2] 유리라는 투명도와 색상 생성 장치를 통한 흐릿함의 결합은, 빛이 색유리를 통과해 돌바닥에 화려한 색조를 펼쳐내는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보다도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3]

  • 2013년 한국관을 위해, 김수자는 ‘무위(non-doing)’라는 형식적 전략을 통해 변화하는 빛의 우연한 행운이 건물 전체를 (재)구성하도록 할 것이다. 이 방식은 통제되지 않으며, 우연과 실수가 색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바닥과 천장에 설치된 거울은 한국관 안의 색과 빛을 무한히 증폭시켜 관객을 보라, 파랑, 초록, 노랑, 주황, 빨간색의 순수한 빛으로 뒤덮는다.

구심 가속도

  • 이렇게 제안된 전시 환경은 구심 엔진, 즉 끝없이 변화하는 일광이나 관객이 남긴 공감 등 모든 종류의 에너지를 플러그 없이도 흡수하는 발전소처럼 기능할 것이다. 모든 구성 요소와 효과는 중심부와 핵으로 빨려 들어간다. 한국관 전체가 대규모의 체험형 발전기로 전환되는 셈이다.

  • 추가 공간은 색채적 빛의 경험과는 정반대인 것, 혹은 그 최종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무반향실은 소리의 반사를 완전히 흡수하고 외부 소음으로부터 차단되도록 설계된 어두운 공간이다. 이곳은 소리의 안정감을 잃은 채 자신의 심박수이나 혈류가 흐르는 소음 속에 머물 준비가 된 몇몇 사람만을 수용하도록 설계되었다. 마치 블랙홀에 이끌려 빨려 들어가듯 한국관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하게 되는 것이다.

  • 어쩌면 이는 구성 요소가 포착되고, 흡수되고, 감싸였던 김수자의 이전 작업이 요약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관객을 빛도, 소리도 빠져나올 수 없는 우주의 영역으로 데려가 보기로 했다. 그야말로 완벽한 납치다. 더 큰 어떤 가치를 위해서 말이다.

[Note]
[1] 이 구조와 건축적 제약은 작가를 시험하려는 큐레이터의 변덕이 아니라, 특별하고 의미 있는 한국관의 스타일 및 의의의 특수함에 깊이 뿌리내린 프로젝트라고 볼 수 있다. 한국관은 마치 임시로 지어진 세계 박람회형 국가관처럼 보이는데, 이로 인해 관객의 여정은 몰입형 예술 경험으로 설계되어야 했다. 베니스 비엔날레가 현대미술을 중심에 둔 거대한 테마파크인 만큼, 그 형식 자체를 유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즉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모방할 필요는 없었으며, 오히려 세계 박람회형 스타일을 따르는 것이 중요해 보였다. 아방가르드 예술 운동 및 관련 작가의 참여를 위한 자연스러운 장소이자 순간이기 때문이었다. 1970년 오사카 엑스포는 그러한 실용적 유토피아와 진정으로 조화를 이룬 마지막 행사였다.
[2] 이는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를 위해 세워진 크리스탈 팰리스(Crystal Palace), 1914년 브루노 타우트(Bruno Taut)가 쾰른에 세운 글래스 파빌리온(Glass Pavilion), 그리고 1927년부터 1931년까지 피에르 샤로(Pierre Chareau)가 지은 파리의 라 메종 드 베르(La Maison de verre)와 다르다. 이들은 투명함보다는 빛을 공급하는 수단으로 유리 벽돌을 사용했다.
[3] 빌라 알레곤다(Villa Allegonda)를 위해 테오 판 두스부르흐(Theo van Doesburg)가 설계한 <스테인드글라스 구성 II(Stained-Glass Composition II)> (1917) 와 <스테인드글라스 구성 V(Stained-Glass Composition V)>(1917-1918)에서는 이미 디자인 단계에서 회절한 빛의 투영을 계획했으며, 수직 형태 내에서 비구상적으로 분포된 원색 및 보색 등 무지개색 유닛을 구조화하였다. 2007년 한국 안양에서 선보인 다니엘 뷔렌(Daniel Buren)의 <오색찬란한 하늘 아래 산책길(Passages Under a Colored Sky)> 역시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 작품에서는 색유리를 사용한 퍼걸러(pergola) 구조물이 지면에 형형색색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 — 『To Breathe: Bottari』, 2013년 제55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개인전 도록 수록글. 번역(한국문화예술위원회 후원): 전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