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 건축양식에 스며드는 '보따리'
김수자 작가는 1990년대 초에 '보따리' 연작을 시작했고 한국 가정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전통 자수로 장식된 이불보를 국제적인 현대미술의 조형언어로 발전시켰다. 작가는 이불보의 레디메이드 특성보다는 '이미 사용되었었던' 헌 물건이라는 점에 초점을 두고, 그 천들을 사용한 사람들의 무명성과, 육체, 운명 등의 비물질적이고 비가시적인 것에 대한, 즉 삶에 대한 해석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노력해왔다.
작가는 이불보가 사람의 탄생과 죽음, 수면과 사랑, 고통과 꿈 등의 사건들이 발생하는 현장임을 지적했고, 사랑과 복, 행운, 장수, 후손 등의 기원을 상징하는 이불보의 자수 장식을 강조했다. 작가는 이불보에서 인간의 존재를 규정짓는 틀을 가리키는 색인적 기호를 발견했다.
작가는 또한 이불보가 내포하는 젠더의 역할과 미적 구조에도 초점을 두었다. 이불보는 가정에서의 여성노동, 사회에 가려진 여성의 무보상 업무와 활동을 암시한다. 이불보 상징을 활용하는 작가의 활동은 여성의 사회적, 문화적, 미적 의미를 재정립하는 행위였고, 현대예술사에서 여성의 독특한 맥락을 창조하는 행위였다.
올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 설치될 '보따리'는 장소특정적인(site-specific) 설치가 될 것이다. 김수자 작가는 유리, 철조, 나무 등의 다양한 건축 자재와 굴곡진 벽면 등의 일반적인 파빌리온 건축양식을 갖춘 한국관을 전시를 위해 변형시키지 않고, 기존의 건축양식을 최대한으로 살리면서 그 구조 자체가 작가의 특징적인 개념인 '보따리'의 연장선으로 기능하도록 프로젝트를 구상한다.
소리, 빛, 색채 등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는 감성적인 요소들을 사용하여 관객이 전시공간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게끔 하는 체험 중점적인(experiential) 전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전시는 동시에 상징체계의 역할도 수행할 것이다. 왜냐하면, 작가가 바깥 자연을 실내공간 안으로 끌고 들어와 밖을 안에서 보는 상황을 창조하여 안과 밖의 경계선을 넘나들 뿐만 아니라, 전시공간 자체를 자족적인 자연으로 전환시켜 인간의식의 소우주를 재구성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잡동사니를 이동하려는 의도를 충족시키는 수단이라기보다는 그 잡동사니를 묶는 목적을 충당하는 보따리의 기능에서 김 작가는 변화무쌍한 인간역사, 다양한 요소로 구성된 세계, 혹은 다면적이고 다층적인 한 개인의 정체성과 삶을 하나로 묶는 틀의 개념을 발견한다.
우주와 삶의 총체성, 그리고 보편성의 함유
김수자의 보따리는 하나로 결합된 우주를 상징한다. 여기서 우주는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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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의 의식세계를 의미한다. 보따리는 삶의 총체성을 상징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삶을 총체성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그 보따리 상징의 의도는 '하나로 된 우주'라는 개념을 소통, 혹은 타인에게 전달하려는 것이다. 반면 그 보따리 상징의 목적은 '하나로 된 우주'라는 개념을 재현하는 데 있다. 이 점에서, 즉 이동수단으로 지각되는 보따리가 자족적인 우주공간의 상징으로 전환된다는 점에서 김수자의 창조성과 예술성이 두드러진다. 김 작가의 과거 작업들을 살펴보면, 우주의 총체성을 의미하는 '보따리' 개념의 확장은 전통 한국가정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보따리를 전시장으로 옮겨 놓아 첫째, 그 일상적 맥락의 해체를 통해, 그리고 둘째, 시각예술이란 새로운 맥락과의 결합을 통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김수자 작가는 지난 30여 년 동안 전체성과 보편성을 토론하는 작업을 일관성 있게 추구해 왔다. 삶의 총체적인 틀을 논하는 '보따리'도 그렇고, 천조각들을 꿰매어 하나로 연결 짓는 바늘의 의미를 논하는 '바늘 여인'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작업이 제시하는 전체성과 보편성은 관객에 의해 특수하게 분석되어야 한다.
마시밀리아노 지오니가 기획하는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미술전의 주제는 인간역사에서 나타난 모든 창조물을 수집하고자하는, 실행 불가능한 인간의 집착적인 의지를 표현하는 '백과사전적 궁전'이다. 우주의 총체성과 보편성을 논하는 김수자의 '보따리' 개념은 비엔날레의 전체적인 주제개념에 딱 맞아떨어지는 안성맞춤이다. 따라서 올해 한국관의 김수자 <보따리>전은 맥락특정적인(context-specific) 전시가 될 것이다.
나아가 올해 한국관 전시는 절묘하게 시기적절한(time-specific) 행사가 될 것이다. 김 작가는 뉴욕에서 허리케인 샌디를 경험했다. 전기와 가스, 그리고 온수가 없이 일주일간을 고통스럽게 산 작가는 많은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 도처에서 갈수록 빈번하게 발생하는 천재지변을 토론하는 새 작업을 이번 한국관 전시를 통해서 발표할 예정이다. 따라서 자연재해 문제를 다루는 환경의식(environment-conscious)적인 작업이 예상된다.
이렇게 한국의 가정문화, 베니스비엔날레 미술전, 한국관의 건축 특징, 작가 개인의 경험, 관객의 감수성 등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요소들을 꿰어 하나의 네트워크로 결합시키는 김수자의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보따리' 설치는 이 국제전에서 보기 드문 보석 같은 전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From Misulsegye Art Magazine, May 2013 |